김경민 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총장
아웅산 수치의 미얀마가 나락으로 떨어졌다. 미얀마 불복종운동에 대한 대한민국 국민의 관심은 이제 거의 사라졌지만 세계 17개 에큐메니칼 운동체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버마 플랫픔’은 미얀마 민주화운동을 위한 소통과 지원을 지속하고 있다. 버마 플랫폼을 통해 들어오는 소식은 처참하기 그지없다. 수치의 집권 이후 희망의 경로를 찾아가던 미얀마는 현재 길을 잃었지만 그래도 법과 국가의 이름으로 온갖 악행이 저질러지고 있는 현장에서 시민들과 청년들의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대한민국은 일본, 대만, 호주, 뉴질랜드와 함께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되는 아시아 태평양의 몇 개 국가 중 하나이다. 분단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식민지배를 넘어 경제성장과 함께 민주주의를 발전시킨 유일한 국가이기도 하다. 아시아 민주화운동의 현장에서 한국의 사례를 연구한다든가 한국의 운동가요나 한국의 K-Pop이 자주 불리는 것은 한국 민주화 과정에 대한 폭넓은 공감과 인정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K-Pop과 함께 K-민주주의도 대한민국의 유력한 국가 브랜드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시민들은 이미 인식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정치 세력들이 법이 정한 규칙 안에서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자유로운 경쟁을 허용하고 있다. 어떤 하나의 세력이 보편성이나 정의의 이름으로 법이 정한 규칙을 넘어 장기적인 지배를 합리화하는 과정은 근대국가의 역사에서 수없이 반복되었다. 20세기를 통해 파시즘과 스탈린주의와 같은 전체주의 국가체제는 한국에서 이승만 독재와 박정희, 전두환 군부독재를 통해 반복되었다. 진영의 주장을 진리와 정의의 위치로 격상시키려는 유혹은 민주주의 체제 안에서도 변하지 않는 악마의 유혹으로 현존한다.
민주주의는 권력의 공간을 공백으로 설계하고 갈등과 경쟁을 제도화한 시스템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문제와 소음이 일상적으로 노출되고 권력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대립과 혼란은 민주주의를 비효율의 극대화로 오작동하게 만드는 지점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복잡화된 현대사회에서 하나의 정치세력이 다원화된 사회적 요구를 모두 대변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다수의 이익을 대변하면서 소수의 의견도 보호하는 것이 민주주의체제의 근본적 화두이며 그래서 한국사회도 민주주의와 함께 자유주의와 공화주의를 함께 허용하는 혼합 정체를 받아들이고 있다.
민주주의는 하나의 사회를 구성하는 것의 불가능성을 전제로 한다. 파시즘이나 스탈린주의와 같은 전체주의 체제는 하나의 통일된 사회와 그 사회에 대한 복종을 국가의 이름으로 요구한다. 그러나 전체주의체제가 진리로 제시하는 사회는 항상 이름을 만들어 내지 못한 다양한 구성원들을 배제한다. 최근 급부상하는 플랫폼 노동자들은 다양한 영역에서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대상이다. 여성이나 청년, 탈북민이나 다문화 가정, 지방과 마을단위 주민들도 자신들의 정치적 주체성을 표시할 제도의 허술함으로 합리적 참여의 경로를 모색하고 있는 대상이다. 다양한 정치적 주체의 의견이 표출되고 합리적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양당제로는 역부족이다. 사회가 복잡하고 다원화될수록 정치적 해결을 위한 공론장의 필요는 높아지고 그것은 문제 제기와 갈등의 형식으로 표출될 것이다. 그리고 어떤 정치 세력도 다양한 의견을 모두 충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단지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고 경쟁할 수 있도록 민주주의는 열려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갈등과 모순이 일차적으로 드러나는 곳이며 갈등과 모순은 민주주의 체제내에서는 필연적으로 영구적일 수밖에 없다. 갈등과 모순 소음과 혼란이 공론장에 드러나지 않는 정치체제는 전체주의 체제일 수밖에 없다. 분절된 사회의 다양한 욕망을 발굴하고 인권, 자유와 정의의 원리로 민주주의를 심화 확대하는 정치적 매개 역할이 시민사회 운동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현 제도와 체제가 떠 않을 수 없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우리사회 내부에 현존하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요구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하기 때문에 시민운동은 언제나 체제 초월적 자기정체성을 가진다. 문제를 제기하는 자를 배제하고 억압하는 정체를 전체주의라 한다면 우리가 민주주의에 기대를 거는 것은 민주주의는 문제 해결을 민주주의 자체의 심화와 확대를 통해 해결하는 현재 인류가 가진 유일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시민의 희생으로 만들어온 한국 민주주의가 자기 문제를 민주주의의 확대를 위한 계기로 활용하는 성숙한 민주국가로 정착하기를 바란다. K-민주주의는 한국시민의 자랑이기도 하지만 아시아 민중들의 희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출처 : 경북일보 - 굿데이 굿뉴스(http://www.kyongbu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