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 기자
마산YMAC 아침논단 100회 특집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 초청강연
일본계 귀화 한국인이 본 한국사회
미국, 일본에 치중된 외교 정책 우려
"한국 평화 지키는 길 스스로 찾아야"
예로부터 대륙에서 바다로, 바다에서 대륙으로 오가는 관문인 한반도는 열강들이 각축전을 벌이는 무대였습니다. 힘과 경제 논리가 첨예하게 맞붙어 때로는 완충지대가 되기도, 때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긴장감이 감도는 경계지대가 되기도 했습니다. 한반도에 뿌리를 내려 살아가는 한국은 한반도를 두고 열강들이 내리는 결정에 쉽게 휩쓸릴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그런 만큼 미국, 일본, 중국, 북한 등 주변국과 관계 설정이 중요합니다. 당장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미중 갈등, 북핵 문제 등 해결해야 할 현안이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어떤 외교를 해야 할까요? 한국은 어떤 길을 가야 할까요? 귀화 한국인으로 한일 관계와 일본 우익, 독도 문제 등을 연구해온 호사카 유지 세종대학교 교수가 제시한 길을 정리해봤습니다.
호사카 유지 교수는 세종대 독도종합연구소장을 비롯해 독립기념관 비상임이사,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이사를 맡을 정도로 한일 문제에 관심이 많다. 한일 양국을 폭넓게 이해하는 그가 내뱉는 한 마디 한 마디는 두 나라에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가 지난 8일 창원을 찾았다. 마산YMCA는 아침논단 100회 특집 강사로 호사카 유지 교수를 초청했다. 이날 오전 10시 3.15아트센터에서 열린 강연에는 홍남표 창원시장을 비롯해 시민 50여 명이 함께했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학교 교수가 지난 8일 창원 3.15아트센터에서 마산YMCA 아침논단 강사로 나와 이야기하고 있다. /박신 기자
◇지정학적 관점으로 본 한반도 = 호사카 교수는 먼저 지정학이 어떻게 침략 논리로 발전해 왔는지 설명했다. 대륙 국가는 바다로, 해양 국가는 대륙으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에서 침략과 전쟁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지정학 관점에서 유라시아 대륙을 마지막에 지배하는 자가 세계의 주인이라고 보는 것이 있다. 그런 과정에서 대륙과 해양을 이어주는 한국은 지리적으로 중요한 위치인 셈이다. 그래서 중국은 동아시아 동맹을 해체하려고 하고 미국은 동맹을 더 많이 맺어 한반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이다.”
호사카 교수는 한반도와 닮은꼴로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를 꼽았다. 지정학적으로 남쪽에 있는 우크라이나는 서방세력과 가깝고 북쪽인 벨라루스는 러시아와 관계를 맺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반도로 치면 북한이 벨라루스, 한국이 우크라이나로 두 지역 모두 일종의 완충지대라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는 러시아와 서구 유럽의 완충지대로 균형을 유지하던 곳이다. 그런데 미국과 서방국가들이 나토를 확장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겼다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상황이다.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면 핵무기가 러시아 가까이 배치될 수도 있었기에 푸틴으로서는 이를 견디지 못한 것이다.”
호사카 교수는 “실제로 나토가 처음에는 16개국에서 출발해 지금은 31개국까지 늘어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미국과 러시아 등이 우크라이나 비핵화 과정을 북한에도 적용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소련이 붕괴할 때 우크라이나에는 핵탄두가 1800여 개 있었다. 당시 세계 3위에 해당할 정도로 많은 핵미사일이 있었던 건데, 당시 동맹국이었던 러시아와 미국, 영국이 비핵화를 하면 지켜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를 믿고 비핵화를 한 것인데 결과적으로 배신당한 거다. 북한 정권도 이를 잘 알기에 비핵화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호사카 교수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관련해 새로운 흐름도 전했다.
“중국이 새로운 중재자로 나타났다. 사실 우크라이나는 중국과 원래부터 우호 관계를 맺어온 나라다. 젤렌스키가 그 루트를 통해 시진핑과 직접 통화까지 했다. 실제로 시진핑은 핵전쟁에 승자는 없다고 푸틴에게 경고까지 했다. 중국이 세계 질서 중심에 서야 한다는 야망을 품은 시진핑은 지금 측근을 동원해 전쟁 중재에 나서고 있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학교 교수가 지난 8일 창원 3.15아트센터에서 마산YMCA 아침논단 강사로 나와 이야기하고 있다. /박신 기자
◇미국과 일본이 내세우는 지정학 논리 속 한국은 = 호사카 교수는 미국이 택한 지정학적 전략을 ‘대중국 포위망’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전략은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이미 19세기부터 세워져 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에 인접한 나라들을 포섭해 궁극적으로 유라시아 대륙을 지배하겠다는 것이다.
호사카 교수는 미국이 큰 틀에서 대중국 포위망 전략을 택하면서도 상황에 따라 유동적인 판단을 내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미국도 국내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 대기업과 중국의 관계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일론 머스크 등 대기업 CEO가 중국을 수차례 방문했는데, 이는 바이든 정부에 대한 항의 성격이 있다. 결국 내년 대선 등을 고려해야 했던 미국 정부가 유화적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그러면서 사실상 이념 외교를 펼치는 한국 정부의 태도를 지적했다.
“한국은 계속해서 중국과 대립하는 상황인데 갑자기 이를 멈추기는 어려울 것이다. 대신 중국과 사이가 안 좋은 베트남을 찾는 등 관계를 맺고 있는데 공산주의 국가인 베트남과 관계를 쌓는 게 과연 이념 외교가 맞느냐. 아니다. 한국 역시 미국의 중국 포위망이라는 지정학적 논리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이어 호사카 교수는 한국도 일본이 취하는 외교 전략으로 머지않아 전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기시다 총리는 자유민주주의 연대라는 말보다 법에 입각한 국제법을 준수하는 나라와의 연대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결국 국제법만 준수하는 나라면 어떤 나라든 상관없다는 것이다. 이념 외교에서 법을 내세운 외교로 전환됨을 의미한다. 한국도 주변 흐름을 따라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학교 교수가 지난 8일 창원 3.15아트센터에서 마산YMCA 아침논단 강사로 나와 이야기하고 있다. /박신 기자
◇한국이 나아가야 할 길 “새로운 지정학 논리 만들어야” = 호사카 교수는 한반도가 살길은 평화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완충지대 역할을 해야지, 열강이 세력 다툼을 하는 경계지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외교의 기본은 우호관계 구축인데, 반대로 가면 결국 전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어느 한쪽에 붙어가면 제2의 한국전쟁,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될 것이다. 중국, 북한과도 적극적으로 대화하려고 해야 한다.”
호사카 교수는 한미동맹이라는 큰 틀을 유지하면서도 중국과 우호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미국이 중국, 북한 나아가 러시아와 대항할 동맹을 넓혀 나가는 전략을 택하고 있는데, 한국이 거기에 말려 들어가면 안 된다. 한반도 평화를 지킬 수 있는 새로운 지정학적 논리를 발전시켜야 한다. 특히 기존 지정학처럼 국가를 영토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중시하는 지정학이 필요하다.”
그러면서 한반도는 영세중립지역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당장 북한과의 대화도 오면 하겠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적극적으로 다가가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남북평화공존으로 나아가야 한다. 더 강한 경제력, 군사력, 기술력이 갖춰져야 가능한 일이다.”
/박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