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 출신 항일 독립운동가 김명시(金命時·1907~1949) 장군이 지난 12일 독립유공자로 인정된 가운데 지역 시민단체들이 유공자 결정에 환영하고 나섰다.
마산YMCA는 15일 입장문을 통해 "김명시 장군의 독립운동 공적과 지역사회의 여러 노력에 비해 늦은 결정이지만, 지금이라도 독립유공자로 인정된 것은 크게 환영한다"며 "그동안 이념 분쟁으로 그의 공로가 묻히고 가족이 숨죽여 살아야 했던 과거를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이번의 결정이 이념 프레임으로 장군의 행적을 가렸던 지난날에 대한 보상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단체는 "김명시 장군의 공로가 국가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정된 77주년 광복절은 우리 지역사회민들에게 더욱 뜻깊은 날이 될 것이다. 그동안 국가가 마땅히 해야 할 예우를 이제야 시작하게 되었으니, 김명시 장군을 알리기 위한 활동에 정부가 앞장서기를 바란다"며 더불어 김명시 장군의 서훈 추서를 시작으로 우리 지역에는 크게 알려지지 않은 여성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우리가 잊고 있는 김조이, 최봉선, 양한나, 김두석, 안음전 선생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들을 기리는 활동으로 확장되기를 기대한다"고 요청했다.
김명시 장군은 19살이던 1925년 모스크바 공산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1927년 중국 상해에서 항일 독립운동을 시작했다. 1930년 하얼빈 일본영사관 공격을 주도했고, 1932년 귀국해 활동하다가 붙잡혀 7년간 옥고를 치렀다. 출옥 이후에는 중국 화북지역에서 조선의용군 부대 지휘관을 맡아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1942년 조선의용군 여성부대를 지휘하면서 '백마 탄 여장군', '조선의 잔다르크'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사회주의 활동 이력과 광복 후 행적이 불분명하다는 둥 이유로 그동안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다행히 지역 시민단체가 보훈처에 유공자 심의 요청을 하고 북한 정권 수립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근거를 밝혀낸 끝에 지난 12일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다.
박준혁 기자 pjhnh@k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