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동완 기자
3557개소 중 142곳에서 부적정 시공 발견... 시민단체 "법적 책임"-시흥시 "시행사 고발·손배 청구 검토"
경기도 시흥시 하수관로정비 임대형 민자 사업(BTL) 부실 의혹은 한 시민의 제보로 시작됐다. <시흥타임즈>는 2년간 현장을 추적하며 문제의 실체를 꾸준히 보도해왔다. 이번 기사는 민관공동조사단 결과를 포함해 그 과정을 종합 정리한 것이다.
경기도 시흥시가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신천·대야·은행동 일대에서 추진한 하수관로정비 임대형 민자사업(BTL)이 부실시공으로 확인됐다.
시흥시는 지난 14일 시흥ABC행복학습타운에서 열린 민관공동조사단 결과보고회를 통해 "전체 조사 대상 3,557개소 중 142곳(3.78%)에서 부적정 시공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정화조 미폐쇄 및 부실폐쇄 106건, 오수받이 매립·확인 불가 20건, 지반 침하 8건 등 다양한 하자가 드러났다.
민관공동조사단은 "시행사와 시공사의 부실 시공, 감리단의 현장 확인 부족, 행정의 사후 검증 미비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며 "일부 구간에서는 의도적인 은폐 정황도 확인돼 경찰 수사를 통한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시민 제보에서 시작된 의혹

사건의 시작은 2023년 가을, <시흥타임즈>에 접수된 한 시민의 제보였다. 대야동 상가건물에 거주하던 A씨는 수년째 하수가 역류하고, 지하실 벽면이 젖어 곰팡이가 피는 피해를 겪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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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도를 여러 차례 뚫어도 해결되지 않자 A씨는 직접 건물 앞 도로를 굴착했다. 그 결과, 건물에서 나오는 하수관이 도로 하수관로와 전혀 연결되어 있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시가 추진한 하수관로 정비사업 과정에서 연결 공사가 누락된 것이다.
당시 시흥시는 "민자사업으로 시공된 구간이라 민간업체 책임"이라며 선을 그었고, 시공사는 "우리 잘못이 아니다"고 맞섰다. 결국 A씨는 2023년 9월, 시와 시공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한편 시흥시에는 2000년 준공된 BTL사업 준공 이후, 유사한 민원이 1000건 이상 접수돼 있었다.
정화조 안에 분뇨 그대로… 허위 문서 정황도
2024년 12월, 시흥시의회는 하수관로정비특별위원회(특위)를 구성해 무작위 현장 점검에 나섰다. 그 결과 대야동의 두 곳에서 정화조가 전혀 폐쇄되지 않은 채 분뇨가 가득 찬 상태로 방치돼 있었다.
특위는 "정화조 폐쇄신청서가 실제 상황과 다른 허위 문서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김수연 시의원은 "시가 시공사의 정화조 처리 절차를 검증하지 않았다"며 "전수조사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관련기사:시흥시 하수관로 정비사업 '부실' 논란https://omn.kr/2bm1n).
2025년 2월, 시흥YMCA와 시민 102명은 시와 시공사, 시행사를 보조금법 위반 및 사기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고발인 측은 "정화조가 폐쇄되지 않았는데도 허위 서류로 공사비와 보조금을 수령한 정황이 있다"며 "시와 시공사 모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성민 변호사는 "하수관 미연결, 정화조 미폐쇄와 같은 명백한 하자가 확인됐음에도 시는 수년간 비용을 계속 지급했다"며 "행정의 관리·감독 실패이자 구조적 문제"라고 지적했다(관련 기사:수백억 공사에도 '똥 가득' 하수도관, 시흥시민들 고발 나서https://omn.kr/2cc02).
시흥시 "사과드린다, 전수조사 실시"
고발이 이어지자 시흥시는 즉각 공식 입장을 밝혔다. 박승삼 부시장은 2월 27일 기자회견에서 "그동안 불편을 겪으신 시민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모든 민원을 전수조사하고, 하자가 확인되면 즉시 보수·환수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시는 신천·대야·은행동 일대 1030건의 민원을 직접 방문해 조사하고, 민관공동조사단을 구성해 6개월간 정밀 조사를 진행했다. 또 5월에는 '소통 거버넌스'를 발족해 시민·전문가·단체가 참여하는 정례협의체를 구축했다(관련 기사:시흥시 '똥 가득' 하수관로 BTL 전수조사 "시민께 사과"https://omn.kr/2cdn0).
10월 14일, 민관공동조사단은 6개월간의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부실시공이 사실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무작위 점검 대상 67개소 중 11곳(16.4%)에서 부적정 시공이 확인됐고, 전체 전수조사에선 정화조 미폐쇄 19건, 부실폐쇄 87건, 오수받이 매립 20건, 지반침하 8건이 추가로 확인됐다.
준공 서류도 부실했다. 사진 누락 1394건, 정화조 폐쇄신청서 누락 656건, 정비일자 오류 496건 등 행정 관리 체계 전반에 걸쳐 허점이 발견됐다.
조사단장인 이상훈 시의원은 "시행사, 시공사, 감리단이 현장 확인 없이 준공 승인을 받았고, 시도 사후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의도적인 은폐 정황이 있는 만큼 경찰 수사를 통해 철저한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는 "조사 결과를 겸허히 수용하며, 시행사·시공사에 대한 고발과 손해배상 청구 등 법적 조치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민자사업의 구조적 허점 드러나
이번 사업은 민간이 410억 원을 선투자하고, 시가 20년간 임대료와 운영비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준공 이후 하자 민원이 쏟아졌지만, 시는 매년 약 35억 원에 달하는 임대·운영비를 지급해왔다.
전문가들은 "BTL사업은 초기 재정 부담은 적지만 감리·검증·지급연동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오히려 세금 낭비로 이어진다"며 "이번 사건은 BTL제도의 구조적 허점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주민 A씨는 "수년간 하수가 역류해도 시는 책임을 떠넘기기만 했다"며 "이제라도 진실이 밝혀져 다행"이라고 말했다.
시흥YMCA 관계자는 "조사 결과는 시작일 뿐 피해 주민 구제와 제도 개선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상훈 시의원은 "시민의 안전은 선택이 아닌 행정의 의무"라며 "시흥시는 이번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재시공, 비용 환수, 행정적 책임까지 명확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 남은 과제는 시가 시민 세금으로 운영된 민자사업의 부실 책임을 어디까지 묻고, 어떻게 신뢰를 회복해나가느냐에 달려 있다. 수년간 악취와 침수 피해, 반복된 민원 속에 기다려온 시민들은 이제 '결과보다 행동'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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